소크라테스는 고대 그리스 철학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로 저술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그의 삶과 사상은 많은 제자들의 기록을 통해 후대에 깊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중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플라톤이 기록한 유명한 변론서인데, 소크라테스가 재판정에서 자신을 변호하며 했던 말들을 담은 것인데요. 이 글에서는 소크라테스 명언 모음과 함께 생애, 철학 사상, 그리고 제자와 아내 등 가족에 대해 정리해보겠습니다.
1.소크라테스의 명언 모음, <소크라테스의 변명> 명언 등
소크라테스는 지혜와 무지를 통찰하는 말들로 오늘날까지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의 명언 중 일부는 인간 존재와 지식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들인데요.
특히, 소크라테스의 변명에 나오는 명언은 플라톤이 기록한 소크라테스의 재판 중 변론에서 직접 인용한 말들입니다. 이들은 단순 수사 이상의 철학적 통찰을 담고 있고, 그의 사상을 응축해 보여줍니다. 대표적인 명언들을 참고해보세요.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
<Unexamined life is not worth living.>
: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앞두고 한 말로, 인간은 자신과 삶에 대해 성찰하지 않는다면 참된 의미를 살 수 없다고 한 말입니다. 철학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I know that I know nothing.>
: 이 말은 소크라테스가 직접 표현한 말은 아니지만,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자신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은 없다는 신탁에 대해 고민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지혜롭지 않다는 것을 안다. 바로 이것이 나의 지혜다."
즉, 무지를 자각하는 것이 진정한 지혜라는 사상을 표현한 명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너 자신을 알라
<Know Thyself>
: 인간은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 비로소 진정한 지혜의 길에 들어선다고 보았습니다.
🔷죽음은 아마도 축복일지도 모른다
: 죽음이 인간에게 어떤 것인지 아무도 모르며, 우리가 그것을 가장 큰 재앙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무지를 지혜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는데요. 오히려 무지한 상태에서 죽음을 나쁜 것이라 단정짓는 태도를 비판했습니다. 이 말은 철학자의 죽음관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국가의 법에 복종해야 한다
: 법은 지켜야 하며, 내가 그것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아테네 시민으로서 나는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이 부분은 변명과 이어지는 크리톤에서 더 명확하게 나오는데, 변명에서도 소크라테스는 법의 판결을 존중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는 훗날 '악법도 법이다.'로 단순화되어 알려지게 됩니다.
🔷선한 사람에게는 아무런 해가 올 수 없다
: 선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나 다음 세상에서나 해를 입지 않는다.
즉, 이는 소크라테스가 자신이 유죄 판결을 받은 후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남긴 말로, 진실하고 정의로운 삶을 살았다면 죽음도 두렵지 않다는 그의 신념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플라톤은 누구고, 소크라테스가 재판을 받은 이유는? |
📌플라톤(Plato) 고대 그리스 아테네 출신의 철학자로, 소크라테스의 제자이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 기원전 427년경 아테네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에는 정치에 뜻을 두었지만,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계기로 철학에 전념하게 됩니다. 그는 철학, 윤리, 정치, 존재론, 교육 등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었고, 자신의 사상을 대화편이라는 문학 형식으로 풀어냈는데, 특히 이 대화편들은 대부분 소크라테스를 등장인물로 내세워 소크라테스의 가르침과 사상을 정리한 것입니다. 대표적인 저서에는 국가, 변명, 크리톤, 파이돈, 향연 등이 있습니다. 또 플라톤은 아카데메이아라는 서양 최초의 철학 학교를 세워 체계적인 철학 교육을 시작한 인물이며, 현대 대학의 개념에 가까운 아카데미라는 말도 여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그는 스승 소크라테스를 통해 철학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삶의 방식임을 배웠고 그 가르침을 평생 이어갔습니다.
📌소크라테스 재판의 원인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399년 아테네 법정에서 두가지 죄목으로 고소 및 재판을 받게 됩니다. 첫째, 국가가 인정한 신들을 믿지 않고 새로운 신령을 도입했기에 신성모독이다는 혐의 → 소크라테스는 기존의 신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며, 양심의 소리 같은 새로운 신적 존재(다이미온)를 언급했는데, 보수적인 시민들은 이를 기존 종교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둘째,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혐의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에게 기존 권위자들의 무지를 드러내며 비판적 사고를 가르쳤습니다. 당시 보수 세력은 그가 젊은이들을 선동하여 사회 질서를 해친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표면적으로는 이 두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실제로는 소크라테스의 철학이 당시 민주정과 권력자들에게 불편한 존재였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습니다. 그는 당대 정치인들과 시인들, 장인들에게 질문을 던져 무지를 드러냈고, 이는 아테네의 엘리트들을 모욕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입니다. 또한, 그의 제자 중에는 쿠테타를 일으킨 독재자들도 있었는데(크리티아스), 이것도 소크라테스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결국은 이러한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았고, 독배를 마시는 형벌(사형)을 받았는데, 그는 탈출 기회를 거부하고, 법과 정의에 대한 존중을 끝까지 실천하며 죽음을 받아들였습니다. |
2.소크라테스의 생애
그는 기원전 469년경 아테네에서 태어나, 기원전 399년에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조각가 소프로니스코스를 아버지로, 산파인 파이나레테를 어머니로 둔 그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지혜에 대한 갈증이 남달랐다고 합니다.
특별한 직업 없이 도시의 광장에서 사람들과 토론을 벌였고, 정치인, 시인, 장인 등 다양한 이들과 대화하며 그들의 무지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철학적 탐구를 이어갔습니다.
그의 독특한 교육 방식과 비판정신은 아테네 사회의 보수층에게는 위협이었고, 결국 '청년을 타락시키고 국가의 신을 부정했다'라는 죄명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습니다.
결국 그는 신념을 꺾지 않았고, 독배를 마시는 형벌을 받아들였습니다.
3.소크라테스의 사상
그의 철학의 핵심은 무지의 자각과 지속적인 질문입니다.
그는 지식이란 전달받는 것이 아니라 질문과 대화를 통해 스스로 깨닫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강의보다 문답을 통한 '산파술'을 중요하게 여겼고, 이는 어머니의 직업인 산파에서 유래된 용어로, 자식을 낳게하는 방식입니다.
또한, 그는 윤리적 철학을 중요시했는데, 선이란 무엇인가, 정의로운 삶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도덕적 질문을 던졌습니다. 외적 성공보다는 내면의 올바름과 영혼의 건강을 중요시했습니다.
4.소크라테스의 제자들
그는 가장 유명한 제자로 플라톤을 뒀는데, 플라톤은 스승의 사상과 대화들을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 등 대화편 형식으로 기록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그 외에도 크세노폰은 회상록을 통해 소크라테스의 삶을 전했고, 안티스테네스는 훗날 키니코스 학파(견유학파)의 기반을 마련했으며, 알키비아데스나 크리티아스 같은 정치적으로 논란이 된 제자들도 있습니다.
5.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
그의 아내로 알려진 크산티페는 잔소리 심한 아내의 대명사처럼 언급되곤 하는데, 이는 후대의 과장된 이미지일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그 이유로 고대 문헌에 따르면 그녀는 성격이 강하고 논리적인 인물이었고, 소크라테스가 의도적으로 인내심을 기르기 위해 그녀와의 결혼을 택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그녀와의 관계에서도 철학적 자세를 유지하면서 일상에서 철학을 실천하는 삶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말하길, '전장에서 용기를 배우듯, 가정에서도 인내와 절제를 배운다'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철학자 소크라테스에 대해 살펴봤는데, 직접 저서를 남기진 않았지만 그의 삶 자체가 철학의 살아있는 표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통해 그가 죽음 앞에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모습을 볼 수 있고, 이는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와 지혜가 무엇인지 상기시켜 주는 듯 합니다. 소크라테스 명언들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여러분도 새로운 깨달음을 얻으셨길 바랍니다.